글 작성자: 모두의 근삼이

입사

꿈에 그리던 일터인 당근마켓에 정식으로 합류하여 일하기 시작한지 2년이 되었다.
SI업계에 대한 경험만 있었던 제가 당근마켓에서 일하게 되었을때 기대했던 것들이 있었다.

  • 코드리뷰 문화가 있는 곳에서 개발을 경험하고, 서비스를 위한 진짜 고민을 해보는 것
  • 자율적인 출퇴근과 수평적인 조직문화
  • 최고의 동료라는 복지

모두가 옳은 말을 하는 곳

달콤했던 자유의 공기도 잠깐, 이곳이 일하지 않는 자에겐 낙원은 없는 진짜 정글이었다는 사실을 깨닳게 되는 데에는 오래 걸리지 않았다.
이전에는 경험해보지 못했던 자유와 책임에 따른 시스템 속에서 나는 새로운 난관들에 봉착하게 되었다.

  • 업무 가시성 확보
  • 비루한 개발 능력
  • 설득력의 부재★

딜리버리 정글에서는 설득력이 부족한 PR은 폐기당할 수 있어요.

내가 경험한 딜리버리 파트는 당근마켓이 말하는 신뢰와 충돌 그 자체였다.

솔직히 처음에 이러한 소통 방식이 익숙하지 않았던 나에게는 의견을 반박당하는 시점에 이미 머릿속에서 충돌과 충돌이 일어나서 올바른 논의로 이어지지 않았던 기억도 있었고, 그러한 기억 때문에 다른 사람에게 반대되는 의견을 전달하는 행위도, 상대방이 어떻게 받아들일지 고민이 되어서 쉽게 전달하지 못했던 적도 있었다. 특히 정답이 없는 주제일 수록 더 어려웠다.

심지어는 입사한지 한달이 넘는 시간동안 코드리뷰를 통과하지 못해서 팀 repo에 코드를 기여하지 못했던 시기도 있었다.

처음에는 내가 틀린말을 하고 있는거 같지는 않은데 왜 의견이 받아들여지지 않고, 이런 답답한 상황들이 반복되는건지 이해가 가지 않기도 했었다.
그러나 고민을 하다가 깨닳게 된 사실은 나는 대부분의 경우 논리적으로 말이 되는 말들만 하고, 그 과정에서 나 또한 논리적으로는 맞는 말을 하지만 설득력이 부족한 나머지 답답함을 느끼는 경우가 간혹 있었고, 그럴때 뭔가 억지를 부리는 듯한 느낌이 들도록 말을 하게 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결론적으로 나는 설득력이 부족한 사람이라는 것을 깨닳게 되었고 설득력을 높이기 위한 방법들을 공부하기 시작했다.

그러던 중 고대 그리스 시대의 말을 조리있고 설득력있게 하는 방법을 가르치는 수사학에 대해서 까지 알아보게 되었는데, 아리스토텔레스가 말하는 설득의 3대 요소에 대한 부분이 와닿았다.
설득의 3대 요소에는 에토스(배경/인품), 파토스(친밀도/성격), 로고스(논리/이성)가 있는데 각각 60, 30, 10의 중요도를 가진다는 점이다.

아리스토텔레스가 말하는 설득의 3요소

  • Logos(논리) : 논리적 근거, 실정적 자료, 결정을 정당화 시킬 수 있는 근거
  • Pathos(감정) : 공감, 경청, 유머, 친밀감 형성 등 상대방의 마음을 움직이게 하는 힘
  • Ethos(인격) : 설득자의 명성, 신뢰감, 호감, 인격, 카리스마 등의 인물성

나로써는 이러한 이론이 너무나도 충격적이었는데, 생각해보면 나는 이전 직장을 다닐 때에는 맞는 말을 하는 사람 자체가 애초에 별로 없어서 논리적으로 말이 되는 소리를 잘 하기만 해도 이미 큰 설득력을 갖춘 상태가 되었기 때문에 더욱 좋은 설득력을 가지기 위해서 노력해야할 이유가 없었던 것이었다.

그래서 나는 설득력을 높이기 위해 나머지 두가지에 집중해 보기로 했는데, 배경은 태생적으로 타고 나거나 많은 상황을 통해 오랜 시간이 지나야 쌓을 수 있는 것이라고 생각했고, 남은 하나는 친밀도였다.

근데 이게 재밌는게 다양한 영역으로 해석이 될 수가 있었다. 사람에 대한 친밀도도 친밀도이지만, 의견에 대한 친밀도, 주제에 대한 친밀도도 이러한 설득력이 영향을 주는 지표라는 점이었다.
예를들면 내가 원래 동의 하는 주제, 나와 비슷한 주장의 맥락에 있는 의견, 혹은 내가 익숙한 주제에 대한 토론이 일어나면 더 긍정적으로 검토하고 설득력있게 받아들일 가능성이 높아진다는 것이다.

나는 이러한 점을 활용해서 토론에 참여해보기로 했는데, 결과가 너무 좋았다. 다른 사람이 의견을 꺼내면 우선 동의하는 태도로 경청하고 반박하는 의견을 내더라도 '어 나도 그렇게 생각하는데 그런 관점에서 이런 생각도 해보게 되었다.' 이런 식으로 말을 한다던지, 어떤 주장을 펼치기 전에 토론에 참여하는 대상자들이 아직 익숙하지 않은 주제라면 미리 사전에 더 많은 정보를 제공해서 상대방들이 토론의 주제가 되는 지식에 대해서 익숙해 질 수 있는 시간을 준다던지 하는 방식이었다.

지금은 이러한 설득의 방법을 통해 대화를 하다보니, 더 상대방이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지 더 이해하려는 습관이 생겼고 중요한 회의들에서 나의 의견이 받아들여 지는 상황을 경험하고 배경을 얻고 나니, 굳이 설득을 해서 내 의견을 상대방이 무조건 받아들이게 하는 것이 나의 입지를 위해 반드시 필요한 것이 아니다보니 오히려 상대방의 의견을 더 들어보고 오히려 내가 설득이 되는 경우도 더 많아지고 지금은 굉장히 건강한 토론 문화를 팀에서 경험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최근에 했던 1on1에서는 팀 리더로부터 회의를 할때 내가 많이 성장했다고 느낀다는 피드백을 받아서 너무 기분이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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