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작성자: 모두의 근삼이

2021년은 나에게 수확의 시기였다. 올해 초에 서울에 상경한 이후로 내가 해온 일들을 회고하는 시간을 가져서 였을까? 올 안해 동안은 나 스스로가 나에게 던지는 질문이 많았던 해였던 것 같다.

SK하이닉스로의 파견, 판교 입성..?

회사에서 승진을 하고 처음으로 받은 임무는 개발 팀들과 함께 정자역에 위치한 SK하이닉스 분당두산타워 거점으로 장기 파견을 나가서 하이닉스 사내에 내부용 머신러닝 경진대회 플랫폼으로 사설 Kaggle을 개발해 주는 프로젝트를 담당하는 것이었다. 출퇴근을 부천에서 하던 나로써는 판교로 출퇴근은 너무 부담스러웠기에 회사 대표에게 조금 찡찡대었는데, 예상치 못하게 회사 대표가 야탑 근처에 사택을 구해주었다. 사택도 깔끔했고, 무엇보다 신축 건물인 분당두산타워에서 뷰가 좋은 창가 자리를 배정받아 근무하게 되어서 너무 좋았던 것 같다. 그리고 사실 개발자인 입장에서 한국의 실리콘밸리인 판교에 입성해 보고 싶은 욕구도 있었기 때문에 여러 의미에서 나에겐 새롭고 기분나쁘지 않은 파견이었다.

그리고 입주하게 된 사택의 위치와 주변이 너무 맘에 들었다. 성남 시청 바로 맞은편 건물 7층에 위치한 오피스텔이었는데, 성남시청의 분수와 공원에 가서 한번씩 산책을 하면 삶의 질이 몇배는 올라간 기분을 느낄 수 있었다.

에어비엔비

판교에서 일하게 되면서 원래 부천에 구해 두었던 집이 홀로 남겨지게 되었는데, 그냥 놀리기엔 집에 너무 아까워서 에어비엔비로 수익을 창출해 보기로 결심하여 시작했다. 막상 에어비엔비로 집을 등록하기 위해 자잘한 내부 보수공사들을 진행했는데, 생각했던 것보다 신경쓸 부분들이 너무 많았다. 내가 직접 사용할 때에는 그냥 불편해도 사용했던 것들이, 다른 사람에게 대여해 줄 것으로 생각하고 보니 수리하고 보수할 것들이 생각 보다 많았다. 보기 좋게 사진 찍는 작업도 굉장히 어려운 일이었다… ㅎㅎ 회사일과 병행하여 작업을 진행하다보니 주말에 밖에 작업을 진행할 수 없었는데, 중간에 너무 피곤하고 힘들어서 이걸로 뭐 얼마나 많이 벌겠냐는 생각도 들어서 때려칠까 고민도 했었지만 이미 시작한 작업이니 그냥 끝까지 마무리 작업하고 등록이라도 해보자는 마음으로 등록까지 마쳤다. 생각했던 것 보다 집이 인기가 많아서 지금까지 약 6개월간 영업중인데, 지금까지 하루도 빼지 않고 예약이 가득찼다. 중간중간 관리해 주는 일이 조금 귀찮기는 하지만, 귀찮은것 대비 꽤 큰 수익이 발생하고 있어서 상당히 만족스럽다. 그리고 결국 노후대비는 부동산으로 해야겠다는 생각에 다시한번 확신이 생겼다.

첫 PM

회사 대표가 하도 하이닉스랑 C&C 사람들한테 약을 팔아놔서 파견지인 하이닉스에서 어디 회의를 들어가기만 해도 사람들이 ‘헛! 선임님 말씀 많이 들었습니다.' 요런 뉘앙스로 시작해서 귀찮았던 모든 작업들을 잔반통 정리하듯 나한테 밀어 넣는 탓에 고생좀 했다-.-. 그래도 어리다고 무시받고 불합리한 대우를 받는다거나 하는 경우보다는 훨씬 좋았기에 비교적 즐겁게 적응기를 가졌던 것 같다. 이번 프로젝트에서는 기존에 진행해 왔던 다른 프로젝트들과 명확하게 다른 포인트가 있었는데, 바로 프로젝트 초기부터 설계에 내가 직접적으로 참여하고, 백엔드 구현팀의 PM으로 참여했다는 점이다.

이제 고작 해야 3년차 정도밖에 안되는 나로써는 여러모로 부담스러운 자리였지만, 사실 내심 기대가 되기도 했다. 이전에 프로젝트들을 진행하면서 가장 힘들었던 부분들이 설계 내용과 다른 파트의 개발 진척도에 따라 합이 맞지 않아서 기간이 지체가 되거나 너무 촉박해 지는 것들이었는데, 이러한 부분에 대해서 불평만 할 것이 아니라 내가 직접 조율 할 수 있는 권한을 부여 받은 것이었다.

생각은 그렇게 했지만, 막상 공식적인 회의와 커뮤니케이션, 고객 보고등에 참여하는 것은 생각 했던것 보다도 훨씬 복잡한 이해관계가 얽혀있고, 무거웠다. 아무리 이성적인 판단을 하는 엔지니어가 상대라고 하더라도, 요청 사항에 따라 업무량이나 책임소지가 크게 좌우되기 때문에 대부분이 방어적으로 변할 수 밖에 없었고, 쉽게 흘러갈 수 있는 대화가 오해에 오해를 더해 결국 의도와 다른 방향으로 설계가 틀어져 가기도 했다.

비록 작은 팀이긴 했지만 리더의 입장에서 커뮤니케이션 하는 것에는 생각보다 많은 에너지가 소모 되고, 상대를 설득하기 전후를 위해 준비해야 하는 자료들도 적지 않다라는 것들을 코가 깨지며 배우기도 했다.

그래도 프로젝트는 기대 했던것 이상으로 순조롭게 마무리가 되었다! 저연차의 어린 나이인 내가 프로젝트의 일정을 조율하고 다른 파트의 리더분들과 대화하여 설계를 수정해 나갈 수 있었던 가장 큰 이유는 하이닉스와 c&c의 엔지니어 분들이 정말 나를 존중해 주었고, 기술적으로도 상당히 깨어 있으신 분들이 커뮤니케이션을 담당해 주었기 때문이 아니었을까? 하고 생각해 본다. 아마 작년의 우리은행과 같은 환경에서 같은 프로젝트를 내가 맡았더라면 파국으로 가지 않았을까... ㅎㅎ 새삼 당시 이끌어 주셨던 양영진 이사님이 대단하게 느껴졌다.

길고 험했던 산업기능요원 소집 해제

하이닉스에서 프로젝트를 진행하는 동안 영원히 끝나지 않을것만 같았던 산업기능요원 복무가 드디어 완료되었다. 정말 길기도 했지만, 산업기능요원으로 군복무를 하기 위해 얼마나 찾아보고 마음고생을 했었는지... 산업기능요원이라는 단추는 내가 서울에 와서 끼웠던 단추 중에 가장 끼우기 어려우면서도 중요했던 첫 단추가 아니었을까?

“현역이요? 대학 재학중이시면 사실상 못하신다고 보면 되요”

서울에 무작정 상경해서 본격적으로 공부하기 시작했던 해킹 공부, 하다보니 욕심이 나고 억울해서 군대가 너무 가기 싫었던 내가 산업기능요원을 알아보려고 병무청에 연락했더니 받은 답변이었다. 대학을 포기하고 학점은행제를 선택했던 당시의 오기가 다시 한번 발동하는 시간이었다. 병역특례 관련 법을 뒤져가며 재배정 티오의 존재와 재배정 티오를 쟁취하기 위한 조건들을 조사완료한 나는 서울의 모든 IT 병특 지정업체들을 크롤링하여 이력서를 팩스로 보냈다. 지금 생각하면 미친 방법이지만, 어자피 갈 곳이 없었던 당시의 나로 써는 해볼법한 민폐짓거리였달까?

덕분에 나는 산업기능요원으로 나의 IT 커리어를 시작할 수 있었고, 올해 드디어 자유의 몸이 되었다.

나! 그래도 편법 안쓰고(아닌가?) 당당하게 합법적으로 군 복무를 마쳤다!

커져버린 클라우드팀

내가 케이비시스에 처음 입사할때에는 클라우드서비스팀이 없었다(있었던 적이 있다고 들었던거 같은데 내가 입사할 땐 엔지니어가 한명도 없는 껍데기만 있었다.. ㅎㅎ). 그래서 나와 입사 동기인 책임님과 함께 팀을 배정받았을 땐 정말 아무도, 아무것도 없는 맨바닥이었다. 그렇게 두명이서 시작했던 것이 고작 3년도 안되었는데, 인원들이 하나둘씩 늘어가더니 지금은 8명이나 되는 규모가 되었다. 올해 입사한 사람들만 무려 3명이다. 모든 멤버들의 면접에 직접 참여했던 사람으로써 괜히 잘큰 자식 보는 아빠 마냥 기분이 좋았고, 회사 내에서 가장 잘 뭉치고 자유로운 분위기를 가진 팀인것도 정말 자랑스럽다. 팀원들 모두다 승승 장구해서 잘되었으면 좋겠다!

서비스 운영을 해보고 싶어졌다

연달아 비슷한 서비스를 개발하다보니(작년에는 AI개발 환경 자동화 플랫폼, 올해는 사설Kaggle) 비슷한 갈래의 고민을 상당히 길게 해볼 기회가 생겼고, 고민했던 내용들을 주도적으로 개발할 서비스에 적용해 볼 수 있게 되었다. 무언가에 대해서 깊게 고민 하고 더 잘 동작할 수 있게 고도화 하는 일은 정말 매력적인 일이다. 일하고 있던 회사에서는 분명 내가 다양한 경험을 해볼 수 있는 정말 나에게 딱 맞는 놀이터 같은 곳이었지만, 항상 공들여 개발해놓고 나면 결국 다른 사람한테 뺏기는 기분은 아무리 경험해도 익숙해 지지 않았다.

하이닉스에서 진행한 프로젝트가 성공적으로 끝나고 인수인계 해주고 나자 급격하게 현타가 몰려왔던 것 같다. 마침 산업기능요원 소집 해제 시기까지 맞물려버리자, 서비스업체로 이직해 보고 싶다는 생각이 증폭되는 것은 한순간이었다. 이력서는 분기마다 업데이트를 해두었었기 때문에 가보고 싶다고 생각 했던 회사에 지원서를 작성하는 것은 순식간이었다.

약 2달간의 피말리는 인터뷰 끝에 기대보다 훨씬 많은 업체들로부터 오퍼레터를 받았고, 나는 당근마켓으로 이직하기로 결정했다.

마치며

돌아보면 서울에 올라와서 계속 달리기만 했는데도 어느새 주변에 내가 의지하고 있는 함께 달리는 동료들이 많이 있었다. 보이지 않게 쌓이고 있던 성과들도 내가 지칠때 쯤 어느 순간 고개를 들고 내가 잘 해내고 있다는 걸 말하며 응원해 주고 있었다.

이번 해 겨울은 내가 서울에 올라와서 지내는 겨울 중에 가장 따뜻한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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