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1211 - 입원
진짜 뒤지는 줄 알았다.
식단 일기고 뭐고 아픈덴 다 이유가 있었던 것이다.
한 3주 전부터 복통 강도와 빈도가 점점 심해져서 담당 교수님께 진찰을 받으러 3번이나 방문했었다.
그 중에 한번은 간이식 대장내시경도 했었는데, 오히려 당초보다 궤양성 대장염 증상은 매우 호전된 모양으로 보여서 복통의 원인을 다른 곳에서 찾고 있었다.
그런데 저번주 부터 슬슬 무언가 시동이 걸리더니 고통수치가 지수함수로 올라가기 시작했다.
문제는 담당 교수님 외래진료가 월~목에만 있는데 고통이 금요일부터 못참을 수준이 되기 시작했다.
무당이 뱃속에 들어와서 칼춤을 추기 시작했다.
토요일즈음 부터는 혈변이 나오기 시작했다.
그러는 와중에 이진태와 함께 민종이 결혼식은 또 다녀왔다. 사실 잘 기억이 안난다. ㅋㅋㅋ
타이레놀을 두팩을 찢어먹었는데도 통증이 뚫고 올라왔다.
멈추지 않는 고통을 경험해 본적이 있는가?
고통때문에 잠도 제대로 자지 못해서 실시간으로 정신이 피폐해져가고, 통증이 심해질때 바닥을 데굴데굴 구르다보면 무신론자라도 신을 찾게 된다.
이런 고통에도 불구하고 바로 응급실을 찾아가지 않은건 몇가지 이유가 있었는데,
- 이미 다회차 병원 방문을 했던 기억에, 응급실에 가도 원인을 즉시 찾기 어렵고 결국 담당 교수님의 컨텍스트가 필요할 것이라고 판단했다.
- 응급실 현황을 전해들어 알고 있었는데, 사지가 날아다니는 중증 환자들이 실시간으로 들이닥치는데 내 진료 우선순위가 언제 돌아올지 확신할 수 없었다. 겉으로 보기에는 그래도 걸어서 들어올 수 있는(?) 환자이니까 말이다. (물론 이미 이때 정신은 반쯤 나가 있었다.)
- 위와 같은 상황에서 대기하고 버틸 자신이 없고, 만약 접수되어 진통제를 맞으며 누워있을 수 있게된다고 해도 집이 훨씬 편하고 정신적으로 편안할 것 같았다. 옆에서 막 다른사람들이 죽어나가고 있으면 진짜 제정신을 유지하기 힘들 것 같았다.
- 담당 교수님이 굉장히 적극적으로 진료 일정을 조율하고 편의를 봐주시는 분이었는데, 만약 입원을 한다면 응급실보다는 담당 교수님을 통해 하는게 더 수월할 것 같았다.
- 최근 응급실 비용이 진짜 중증환자로 분류받지 못하면 90% 개인부담이 되어버렸는데, 분명 원인을 제대로 알려면 CT든 뭐든 긴급으로 찍어야 할텐데 좀 억울했다. 왜냐면 나는 궤양성대장염으로 중증난치질환자로 분류되어 산정특례의 혜택을 받고 있기 때문다. 만약 모든 치료를 외래진료를 통해 정상적으로 받는다면 진료비 5%만 지불하면 되는 상황이었기 때문에 더 고민이 되었다.
이러한 이유에도 불구하고 제발 누가 살려줬으면 싶어서 일요일 저녁 쯤에는 119를 부를까 몇번을 고민했었다.
결국 나는 월요일(1209)에 교수님을 통해서 정상적으로 입원할 수 있었다.
입원하자마자 교수님의 지시로 CT부터 내시경 엑스레이 등등 온갖 방법들로 온몸을 뒤지기 시작했다.
물론 입원 한 다음날인 화요일 오전까지도 원인을 제대로 찾지 못해서, 각종 항생제와 진통제를 주렁주렁 달았어도 통증은 나아지질 않았다.
그러던 화요일 오후 교수님이 진행한 내시경에서 원인이 발견되었다.
원래 급하게 한 관장과 대장내시경이라 수면도 안하고 끝부분만 보는게 목적이었는데, 갑자기 교수님이 폭주해서 대장 관문을 돌파하시기 시작했다.
으억으억으억 살려주세요를 반복하던 중 내시경 화면에 염증으로 가득찬 저그 본진이 나오기 시작했다.
궤양성 대장염이 바깥쪽에 있던 본진을 버리고 깊숙한 곳에서 멀티를 짓고 있었던 것이었다.
그 순간 내시경이 너무 깊숙히 들어오고 공기가 장기에 가득찬 나머지 나는 구토를 하게 되었고, 죄송합니다를 외치는것을 마지막으로 기억을 잃었다.
정신이 왔다갔다 하는 사이에 진단명이 내려진 나에게는 제대로 된 약이 처방되기 시작했고, 한숨 자고 일어나자 드디어 나는 맑은 하늘을 볼 수 있었다.
약 5일만에 맛보는 통증없는 공기.
뭐든 할 수 있을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일정많은 12월 가운데, 갑자기 2주간 강제 입원을 하게 되었다.
강제로 내려진 휴식이지만 이 기회를 빌려 나를 한번 다시 돌아봐야겠다.
그나저나 대한민국 의료제도는 정말 짱이다.
개꿀빨고 있다 솔직히.
외국에서 이런 상황을 맞이했다면 정말 상상만해도 끔찍하다.
혼란한 시국 가운데, 그래도 피어나는 애국심으로
살려주셔서 진심으로 감사합니다.